{"subject":"Normalize Human Communication - Chapter 1. 2009. 02 05(Thu)","link":"http:\/\/abin34.egloos.com\/5187651"}http://escape.rash.jp/NHC/NHC_0102_PortraitOfFebruary.html
챕터리스트에서
2009. 02. 02(MON) 를 다 본 후 보면 됨.
이번엔 좀 많아서 잘라고 했는데 다 해석하니까 2시 19분...내일 알바 가야하는데.
번역 내에 주석
@1 : '공주님 안기'라는건

말로 설명하게 욜랭 힘드네...그림도 고자, 어휘력도 고자...
그러니까 영화 '보디가드' 마지막 장면처럼. 어떤 한 사람의 어떤 한 사람의 등과 다리를 잡고 들어올리는 거.
이런거. 나는 해주고 싶어도 해줄 여자가 없지요 넵.
P.S : 음, 찾고보니 그림이 꽤 괜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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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02 05(Thu)
목요일 정오.
촬영한 스즈노의 사진을 보여주자, 점장님은 배를 잡고 웃었다.
타이밍도 안좋았다.
점장님이 오른손에 쥐고 있는 호입크림은,
바닥에 10센티의 하얀 궤적을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지금도 여전히 그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사코 신페이 : ...이 사진, 그렇게 못 찍었나요...?
점장 : 아니아니! 귀엽구만! 이 억지스러운 느낌이 정말.....하하하핫!!
사코 신페이 : 점장님 눈물이 고여있네요...... 그렇게 웃을 만한 사진인가요?
아무래도, 점장의 마음에 든 모양이다.
초침이 2바퀴 반을 돌고 나서야 겨우
점장님은 숨을 헐떡거리며 조리장에서 나왔다.
점장 : 아아~, 간만에 실컷 웃어봤군. 이야, 설마 이렇게 귀여운 아이 일줄은 생각도 못해서 말야
사코 신페이 : 진심으로 안들려요 점장님. 아직 제 기술도 미숙한지라, 제대로 안 나온거라구요
점장 : 핫핫하, 미안미안. 흐음, 꽤 괜찮은 사진이라고 생각한다구. 그래, 뭐랄까...
점장 : 뭐랄까...중학생 커플이 처음으로 둘이서 찍은 사진같은 달콤함이 잘 나왔다고 생각하네. 한마디로 감귤계열이로구만. 오렌지필을 첨가하고 싶어
사코 신페이 : 그거 칭찬하는 겁니까..?
점장 : 칭찬하는거지. 사코군, 귀엽다고 해서 손대면 안된다? 아니면 야한 사진을 찍는다든가
사코 신페이 : 안찍어요!! 점장님은 그렇게도 보고 싶으신 겁니까?
점장 : 보고 싶어
사코 신페이 : 즉답하지 마세요
점장 : 무진장 보고 싶어
사코 신페이 : 반복하지 마세요
점장 : 농담일세 사코군. 단지 자네의 열정이 거기로 빠질 가능성도 있지 않겠나?
사코 신페이 : 아뇨, 없을 겁니다
점장 : 아니, 사람일은 모르는 거야. 좀 더 멋지게 찍고 싶다, 좀 더 아름다운 모습을.....그렇게 생각한 순간, 사코군은 그 아가씨에게!
점장님의 관자놀이에 자동계산대 열쇠를 갖대 대었다.
사코 신페이 : 그, 러, 니, 까, 안찍는 다니까요
점장 : ....오케이, 수영복까진 허락하겠네 사코군. 난 말이지 자네에 순정을 믿고
그대로, 눌러버렸다.
......................
스튜디움 앞 돌담. 오늘도 스즈노는 먼저 기다리고 있다.
넓고 완만한 커브 중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은 너무나 외롭게 비친다.
내가 온 걸 눈치챈 순간 그녀의 얼굴은 미소가 되고,
일어나서는 손을 흔든다.
에노마치 스즈노 : 안녕, 사코 씨. 사진, 어떻게 됐어?
사코 신페이 : 아르바이트하는 곳 점장님에게 보여주니, 폭소하시더라
에노마치 스즈노 : 엑!? 잠깐, 뭘 보여주는거여!? 거기다 폭소라니, 실례잖여-! ...그, 그렇게 심해?
사코 신페이 : 아니, 그럭저럭 나왔다고는 생각하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수십장의 사진을 건넨다.
에노마치 스즈노 : 어디어디.....으아....
스즈노의 반응은 점장님과는 전혀 반대된, 쓴웃음이었다.
한장 한장 볼때마다 '우와아'같은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에노마치 스즈노 : 작은 화면으로 보긴 해서 대충은 상상하긴 했지만... 뭐라카노, 뻘쭘함? 남자 손 처음 잡아보는 여중생? ....뭐, 내긴 하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표현을 늘어놓으면서도, 사진수는 줄어만 간다.
마지막 한장을 가장 끝쪽으로 넘기고, 스즈노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에노마치 스즈노 : ....모델이라는거 어렵구나. 좀 더 얼버무릴 수 있을끼라 생각했는데.
사코 신페이 : 내가 미숙한 것도 있잖아, 모델 때문만은 아냐
모델의 반응에는, 나도 모르게 찍은 나 자신도 침울해진다.
스즈노는 그걸 눈치챘는지,
내 축 처진 어깨를 소리가 날정도로 두드렸다.
에노마치 스즈노 : 자자, 침울해 할 꺼 없다! 별 수 없잖여, 다시 찍으면 되는거잖여!
목소리는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 표정은 웃고 있었다.
사코 신페이 : 스즈노, 즐거워 보이네
에노마치 스즈노 : 전에도 말했제, 모델도 조금 재밌어 졌다구. 최고의 한 장을 찍을 수 있을 때까지 하면 되잖여. 그제?
최고의 한 장. 그 단어에 가슴이 조금씩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몇 천번이고 셔터를 눌러왔다.
그래도 진심으로 베스트 샷을 찍었다는 실감을
맛 본 적은 없었다.
그 장소에 도달 할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해 본다.
눈 앞에는 미소짓는 스즈노의 모습, 손에는 무거운 카메라.
사코 신페이 : 최고의 한 장이라.....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에노마치 스즈노 : 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 가 아니라 찍어야지
모델도 카메라맨도 아직은 서툴지만, 계속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도달점에, 손가락 끝만이라도 닿을지도 모른다.
태어난 등불의 열은, 마음에 목표를 부여하고,
폐속에 들어간 공기를 결의로 바꾸었다.
사코 신페이 : 그래. 난, 몇 번이고 함께 할게
그 대답에 스즈노는 미소지었다. 조용하면서도 열의가 느껴지는 미소였다.
에노마치 스즈노 : 좋~아! 그럼, 오늘도 촬영 해 볼까!
스즈노는 돌담을 튕기듯 내려간다.
옷과 머리카락이 하늘하늘 흔들린다.
에노마치 스즈노 : 사코 씨. 자, 얼렁 가자. 시간과 기회는 안 기댕겨준다고
사코 신페이 : 자, 잠깐 기다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들고, 급하게 렌즈를 카메라에 끼운다.
파인더를 보자, 뒤돌아본 스즈노가 잡힌다.
카메라를 향해 오른손을 뻗어, 손가락 대포를 만들고 있다.
에노마치 스즈노 : 빠~앙. 뭐 이런거라든가~
여기서도 나는, 셔터 찬스를 놓쳐버렸다.
기록하지 못한 영상이 또 하나, 내 기억속에서만 남겨져 간다.
.................
에노마치 스즈노 : 네~엣! 스즈노 쨩입니다~! 이예~이!....안되겠어. 의욕만으로는 얼버무리기 힘들어
사코 신페이 : ...뭐하는거야
에노마치 스즈노 : 말하지맛! ....나도 모르겠다고. 의욕이 있으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았다구...
닛산 스튜디음의 아랫층.
햇빛은 차단되어, 차가 3대는 다닐 정도로 넓은 통로가
커브하면서 뻗어있다.
머리위를 온통 뒤덮은 콘크리트.
굵은 기둥이 등간폭으로 늘어서 있다.
그 사이에 주차장이나 수영장시설로 가는 입구가 있다.
여전히 사람은 없었고, 넓은 공간에 발 소리만 울려퍼진다.
에노마치 스즈노 : 뭐랄까이. 외로워한다든가, 그......남자의 '지키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시키는 느낌이 좋을까?
그렇게 말하며, 스즈노는 콘크리트 기둥에 손을 대고 눈동자 만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에노마치 스즈노 : 사코 씨, 오늘밤은 돌아가고 싶지 않아......
사코 신페이 : ........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로 밖엔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말은 할 수 없었다. 말 없이 셔터를 누른다.
이 사진, 점장님에겐 제대로 통할 것 같다.
분명, 스즈노는 갈기갈기 찢어 버리겠지.
사코 신페이 : ...스즈노는 자연스러운게 가장 좋은 것 같다. 어줍잖게 연기하려고 하니까 표정이 더 딱딱해지는게 아닐까?
에노마치 스즈노 : 자연스럽게 라고 해도..일반적으로 어렵다구.
사코 신페이 : 그렇긴한데... 하지만, 자연스러운 미소가 좋은 사진이 될 것 같아
에노마치 스즈노 : 자연스럽게라......미소 연습같은거, 안하는게 좋을까?
사코 신페이 : ....연습, 했었어?
에노마치 스즈노 : 에? 아.....안했어! 바보, 그런걸, 뭐하려고 해...
그렇게 중얼거리며 볼이 빨개진 것 같긴 하지만,
확인도 하기 전에 스즈노는 등을 돌려버렸다.
에노마치 스즈노 : ...그래도 역시, 찍을거라면 웃는 사진이 좋겠어. 행복해보이는 표정을 남기고 싶거든
사코 신페이 : 행복해 보이는? 귀여운게 아니고?
스즈노는 마치, 결혼식 사진을 찍는 것 같은 소릴 한다.
오디션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지만,
스즈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대로 걸어가는 스즈노를 보고, 황급히 옆에 나란히 선다.
당분간, 콘크리트 통로에 발소리만이 울려퍼진다.
차가운 바람이 계단을 빠져나와,
통로를 타고 빠져나와, 두 사람의 등뒤를 빠져나간다.
스즈노의 발이 멈춘다.
에노마치 스즈노 : ...저기, 사코 씨
사코 신페이 : 응?
에노마치 스즈노 : 나, 사코 씨를 좋아해도 될까?
사코 신페이 : ..........뭐?
한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녹슨 기계처럼 고개를 돌리자,
스즈노는 흐릿한 시선을 앞을 향해 던지고 있다.
사코 신페이 : 스, 스즈노? 무슨 소릴...
에노마치 스즈노 : ....뭘 두려워하는거야. 정말 실례되는 녀석이구만...
사코 신페이 : 두려워하는게 아니라, 놀란거야. 갑자기 이상한 소릴 하니까 그렇지...
에노마치 스즈노 : 그치만, 미소지을 상대가 사코 씨잖여? 카메라가 있다는건 알지만, 결국 사코 씨에게 미소 짓는 거잖여?
사코 신페이 : 그건 그렇지만...
에노마치 스즈노 : 그게 부끄럽다구. 사코 씨에게 유혹하는 느낌이 아무래도 오싹오싹 하거든
에노마치 스즈노 : ...그러니까 그냥, 사코 씨를 좋아하게 되면, 자연스러운 미소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겨....딱히 이상한 건 아니잖여?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디
사코 신페이 :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지만 .... 그런 이유로.....
에노마치 스즈노 : ....풉. 아하하하하하!!
스즈노는 성대하게 웃으며, 뒤돌아서서는 손가락을 내밀었다.
에노마치 스즈노 : 사코 씨, 뭘 그리 우물쭈물 하능겨. 한 가지 제안을 했을 뿐이잖여? 아니면 뭐여? 실은 나한테 마음이 있능겨?
사코 신페이 : 아, 아니, 그게..
말문이 막힌 나를 두고, 스즈노는 나보다 앞에서 걸어간다.
에노마치 스즈노 : 농담이여. ...아~, 재밌었다. 내가 연상의 남자를 놀려먹다니, 왠만해선 기회가 없다구.
사코 신페이 : 뭐, 뭐야...너 날 갖고 논거야?
에노마치 스즈노 : 그건 비밀이여. ....아, 그래. 사코 씨, 그 카메라 타이머 달려있제?
사코 신페이 : 응, 그런데...?
에노마치 스즈노 : 나만 찍어도 재미 없잖아? 사코 씨도 같이 찍어보지 않을려?
대답을 듣지도 않고 스즈노는 뒤에서 가방을 뒤진다. 스텐레스 삼각대를 꺼내들고 그 다리를 늘였다.
에노마치 스즈노 : 자, 셋팅혀-! 사코 씨도, 찍히는 쪽의 마음을 확실하게 느껴보라고
사코 신페이 : 네, 네...
나는 이렇게, 고집스러운 여성에게 계속해서 휘둘리는 것이었다.
그런 슬픈 생각을 하면서, 삼각대와 카메라를 연결한다.
타이머 촬영으로 셋팅하고,
파인더를 스즈노 쪽으로 돌린다.
사코 신페이 : 왠지 안 내키는데...
에노마치 스즈노 : 뭐하능겨? 얼렁 와-!!
사코 신페이 : 알았어. 자, 찍는다...
버튼을 누르자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스즈노가 손을 흔들고 나를 부른다.
옆에 나란히 서자,
스즈노는 옆에 선 내 팔과 얼굴을 교차로 바라보았다.
에노마치 스즈노 : ....아-....저~기...
10카운트 사이의 생각의 결과.
스즈노는 반보정도 다가와, 내 옷 끝을 작게 잡았다.
셔터가 내려간다.
그 사진은, 그야말로
'중학생 커플이 처음 둘이서 찍었던 사진'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꽤 괜찮은 사진으로 현상되게 된다.
이렇게 두 번째 촬영회는 끝나고,
다음 날짜를 정하고 헤어졌다.
귀로로 향하는 스즈노는, 저녁노을의 부드러운 빛을 등뒤로 받으며,
발걸음 속에서 작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인생은 짧으니 사랑하라 소녀여'
그런 말이 들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딱딱한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퍼진다.
노인의 지팡이 소리, 황급히 걸어가는 간호사의 발소리,
병문안온 아이가 게임기를 떨어뜨리는 소리.
오후 6시.
요코하마재난병원의 엔트렌스는,
음표없는 잡다한 소리를 계속해서 반향시키고 있다.
의자에서 올려다본 천장은 높았고,
일몰의 어둠을 가르듯이 형광등이 반짝이고 있다.
사람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해,
건물전체가 조용한 밤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한다.
앞으로 2시간만 지나면, 깊고 깊은, 차가운
정적의 공간으로 변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노이즈에 귀를 기울이기를, 수 분.
어떤 한 소리가, 똑바로 이쪽으로 다가 오고 있다.
나에겐 이미 익숙해진 발소리.
이노사카 토모카 : 오늘도 마중나오느라 수고했어요, 세바스챤
사코 신페이 : 당치도 않은 말씀이옵니다, 아가씨.
이노사카 토모카 : 차는 준비 됐나요?
사코 신페이 : 물론이옵니다, 2륜이지만
이노사카 토모카 : 잘 부탁 드립사와요
사코 신페이 : .........
이노사카 토모카 : ........
사코 신페이 : ........
이노사카 토모카 : ......
사코 신페이 : ........
이노사카 토모카 : ..........
이노사카 토모카 : ....저기, 사코. 언제까지 계속할거야? 언제부터 내가 아가씨가 되버린거야?
사코 신페이 : 토모카씨가 먼저 시작했잖아요....잘 부탁 드립사와요, 라는건 대체 어느나라 말입니까?
이노사카 토모카 : 고대 헤브라이 어야
사코 신페이 : 절대로 아니겠죠?
이노사카 토모카 : 그건 모르지.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잖아?
이노사카 토모카씨는 방긋 웃었다.
고등학교 시절 선배이며, 오랫동안 짝사랑 상대이며, 간호가 1년차.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이라는 어중간한 관계는,
이렇게 일을 끝낸 토모카씨를
마중나온다 라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내가 멋대로 오고 있다는 게 맞는 말이었고,
옆에서 보면 꼴사나운 남자로 보일지도 모른다.
이노사카 토모카 : 아 그래. 사코, 슬슬 그거, 오지 않았을까?
사코 신페이 : 왔어요
이노사카 토모카 : 정말? 오늘은 사코 집, 들렀다 가도 돼?
그거라는 건, 아이릿슈위스키, 젬슨18년.
지금은 이노사카의 명의로 술이 오는 건 극히 평범한 일이 되어버렸다.
사코 신페이 : 상관은 없지만, 왜 항상 제 집으로 오는 건가요....
이노사카 토모카 : 뭐 어때. 같이 마실 사람이 너 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잖아. 술은 혼자서 마시는게 아니라구
사코 신페이 : 네, 네....
여전히 난처한 태도를 취하긴 해도,
내심 조금 기뻐하는 내가 그곳에 있다.
'반한 상대에겐 약하다' 라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라,
한밤중에 갑자기 들이닥쳐도,
미소로 맞이해 버린다.
결국,
찬장에 진열된 유리잔을 보고 헤죽거릴 정도니,
나도 참 어쩔 수 없는 녀석이었다.
사코 신페이 : 그럼 갈까요, 아가씨?
이노사카 토모카 : 그래요, 세바스챤.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건 리무진 아니면 롤스로이스겠죠?
사코 신페이 : 혼다의 오토바이라 죄송합니다,
이노사카 토모카 : 후훗. 괜찮아요. 그 뒷좌석, 싫진 않으니까
아무렇지 않은 대화를 계속하며,
손과 손이 접촉하지도 않은채 나란히 걸어간다.
이 8센티의 거리를 좁히는건,
언제가 될까...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던 때였다.
에노마치 스즈노 : .......아
여자아이가 종종걸음으로 자동문을 빠져나와, 스쳐지나간다.
어둠속에서도, 어디선가 본 듯한 옆모습.
몇 시간 전에 본 그 복장을 확인한다.
사코 신페이 : ...어, 어라...?
여자아이....스즈노는 이쪽을 눈채치지 않고,
구석을 지나, 엔트랜스로 달려간다.
깜짝놀라 뒤돌아보는 나를,
토모카씨가 이상한듯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이노사카 토모카 : 왜 그래?
사코 신페이 : 아니, 아는 사람인 것 같아서...
지금은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지만, 틀림없이 스즈노였다.
짧은 순간이라해도,
파인더로 계속 보았다. 틀림 없다.
토모카씨는 시선 끝을 찾으려는 듯 돌아본다.
그리고, 덤덤하게 말했다.
이노사카 토모카 : 스즈노쨩이 왜?
사코 신페이 : 헤?
나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사코 신페이 : 토모카씨가, 왜 알고 있는거죠?
그렇게 묻는 나를, 토모카씨는 뭘 이제와서 라는 듯이,
조금 놀란 듯 대답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순간, 들었으면 안될 말이었음을 인식했다.
하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울려퍼진다.
이노사카 토모카 : 그야, 여기 입원하고 있는 환자니까 그렇지. ....몰랐어? 스즈노쨩, 네가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가게 점장님 딸이야.
....................
단단한 얼음을 깨는 소리가 부엌에서 들린다.
일정한 템포로 움직이는 아이스픽이 얼음을 깬다.
불투명한 직방체는 점점 동그라미 형태에 가까워진다.
병원에서 1킬로도 안가면 도착하는 나의 집.
촬영회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스즈노가 입원한 이유를 묻자,
토모카씨는 단 한마디만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노사카 토모카 : ....혈액의, 병
테이블에는 이미 위스키 유릿잔이 침좌하고 있고,
곧 그 유릿잔에 채워질 알콜을 기다리고 있다.
안주는 초콜렛과 피스타치오.
앞으로 몇십분만 기다리면 피자가 온다.
토모카씨의 왼손 위. 헝겊 너머로 올려진 얼음덩어리는,
얼음을 향해 날아오는 송곳에게 깎이고 있다.
튕겨나간 결정은, 공중에 자그마한 반짝임을 남기며 사라져간다.
사코 신페이 : 혈액요....?
계속해서 묻는 나에 대해,
토모카씨는 시선도 손의 움직임도, 뭐 하나 변하지 않은채로 대답한다.
이노사카 토모카 : 더 이상 묻지 마, 사코. .....미안. 환자의 프라이버시에 대한건 말할 수 없어. 담당이 아니니까 자세히는 잘 모르는 것도 있지만
그럭저럭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을때, 토모카씨는 픽을 바꾸었다.
3개가 돌출된, 짤막한 포크같은
아이스픽을 꺼내들고는, 표면을 얇게 깎아 나간다.
바텐더가 하는 걸 보고 동경하기 시작해,
동경만으로 그치지 않고, 체득했다고 한다.
직접 깎은 얼음으로 위스키를 만드는 것이,
토모카씨의 즐거움이었다.
21세라 하기엔 조금 텁텁한 취미지만,
그런 부분이 왠지 어울리는게, 이노사카 토모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노사카 토모카 : ....자. 한 개 다 됐어
다 된 얼음은 유리알처럼 투명했고,
아름다운 구체 형태를 그리고 있다.
딸그랑.
텅 빈 유릿잔에 얼음이 떨어지자, 기분좋은 소리가 났다.
토모카씨는 만족스러운 듯 입가에 미소가 생긴다.
이노사카 토모카 : 하나 더 만들거니까, 먼저 마시고 있어
사코 신페이 : 기다릴게요
이노사카 토모카 : 상관없는데...
단지 선후배 그런 관계가 아니니까. 그렇게 들리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런 내 달콤한 망상 따위 알 지도 못한채.
토모카씨는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픽으로 깎기 시작한다.
이노사카 토모카 : ....있지, 사코. 스즈노쨩이랑 촬영하는거, 앞으로도 계속 할 거야?
사코 신페이 : 계속 해야죠
이노사카 토모카 : 그래...
토모카씨는 조금 생각중인 듯한 얼굴을 만든다.
이게 질투라면 좋겠지만, 현실은.
이노사카 토모카 : 스즈노쨩이 걱정이야. 병원 빠져나와서, 그런 걸 하고 있는것도 몰랐고...
이노사카 토모카 : 마음속으로 어깨를 떨군다.
한조각의 질투도 없는,
그저 환자를 걱정하는 성실함이 사랑스러우면서도 분하다.
이노사카 토모카 : 사코. 계속하는건 괜찮아. 단지, 무슨 일 생기면 꼭 연락해. 꼭이다?
사코 신페이 : 무슨 일이라뇨?
이노사카 토모카 : 예를 들면...계단에서 넘어진다든가, 갑자기 빈혈로 쓰러진다든가 그런거
사코 신페이 : ....심한 병인가요?
이노사카 토모카 : ..........
얼음을 깎던 손이 멈췄다.
대답은, 방금이라도 울어버릴 듯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건 대답으로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사코 신페이 : ....죄송해요, 안 들었던 걸로 해주세요
이노사카 토모카 : ...응
토모카씨는 얼음을 깎는 작업으로 돌아간다.
죄악감은 있지만, 그 이상의 사항이 덮고 있었다.
머릿속에 정리되질 않는다.
목숨과 연관된다...그 말이 너무나도,
낮에 파인더에 비춰진 활발한 존재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노사카 토모카 : ...저기, 사코. 왜 스즈노쨩이 촬영을 의뢰했는지, 알아?
사코 신페이 : ....아뇨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래도,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무거운, 목숨과 연관된 혈액의 어떤 병.
사진을 찍어달라는 것.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찍고 싶다는 것.
그 이유, 그 의미.
사실에서 유추되는 대답은 명백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 저음으로써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다.
몇 시간 전, 파인더 앞에서
뻣뻣한 미소를 만들던 여자아이에게.
나란히 옆에 서서 내 옷깃을 잡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못했던 여자아이에게.
그 대답을 끼워맞추는건, 지금은 아직, 너무 괴로웠다.
이노사카 토모카 : 그래....
토모카씨는 짧게, 그렇게만 말했다.
서로 한 번씩 한숨을 쉬고,
당분간, 얼음을 깎을 뿐인 침묵이 흐른다.
몇 십번, 얼음을 깎았을까.
포크처럼 생긴 픽크를 꺼냈을 때,
토모카씨가 독백처럼 중얼거린다.
이노사카 토모카 : ....나이팅게일의 서사(誓詞)라는거, 알아?
사코 신페이 : 네?
이노사카 토모카 : 내가 좋아하는 말이야. 마지막엔 이런 말로 끝나. "나는 진심을 다해 의사를 돕고, 내 손에 맡겨진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이 몸을 바친다"
이노사카 토모카 : ...행복을 위해. 반대로 말하면, 환자들은 전부, 불행한 상태에 있는 거겠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이해하지 못한채,
나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것 밖엔 하지 못했다.
그런 나를 의식밖에 두고,
토모카씨는 다시 말을 잇는다.
이노사카 토모카 : .....이렇게 무심히 얼음을 깎고 있으면 말야,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돼. 나와 환자와, 뭐가 다른가, 를 말야
이노사카 토모카 : 스즈노쨩은....그저, 조금 불행할 뿐이었다. 운이 안좋았어. 그것만으로, 그 장소에 있는거야
이노사카 토모카 : ....단지 그것뿐이야. 그것만으로, 스즈노쨩은 많은 것들을 참아야만 했어. 식사도 운동도 제한. 학교도 갈 수 없어
이노사카 토모카 : 그곳에는, 스즈노쨩과 비슷한 사람들이 아주 많아.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우리들이 있는거야....언제까지고, 불행하게 놔두고 싶진 않잖아?
얼음이 완성되었다. 유리잔에 떨어져, 소리를 낸다.
토모카씨는 픽과 헝겊을 정리하고,
테이블에 놓인 사진을 손에 잡았다.
표면에 비춰진 미소에, 약간 눈을 감는다.
이노사카 토모카 : 언제까지고, 불행한 채로 놔두고 싶지 않잖아? ....행복해야지. 언제까지나, 웃고 지낼 수 있게 해줘야지. 설령...
우리들이, 도와줄 수 없다 하더라도.
그 말이 이어지는 일 없이,
토모카씨는 슬프게 웃으며, 한숨을 지었다.
이노사카 토모카 : ...뭔가, 무거워졌네. 미안. 안좋은 버릇이야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아니오'라고 대답하지도 못하는 나였다.
토모카씨는 손질된 위스키의 뚜껑을 뽑았다.
호박색 액체가 얼음 표면을 미끄러져 내려간다.
녹은 물과 위스키의 희미하게 흘러한 흔적이
유리잔 밑에서 조용히 춤춘다.
이노사카 토모카 :....마실까. 모처럼 비싼 걸 사왔다구. 사코에겐 공짜술이니까, 감사하라구?
유리잔이 부딪히며, 40도의 알콜이 목을 타고 흘러내려간다.
있어야할 풍미는 어딘가 나에게서 멀리 가버리고,
목에는 타들어가는 듯한 감촉만 그저 남아있었다.
.........................
눈을 뜬다.
방에 빛은 없고, 창문에서 희미하게 달빛이 내려오고 있다.
아무래도, 잠들어 버린 모양이다.
융단에 누워있는 내 위에는, 이불이 덮혀있다.
일어났지만, 희미한 두통이 남는다.
기억은 6잔까지. 토모카씨가 담당하게 된,
예전에 라쿠고(落語: 일본의 익살을 주로 한 이야기. 만담. <컳헑 주>)를 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 부근에서 기억이 흐릿해졌다.
방에는 에어컨 구동음과,
소파에서 들려오는 작은 숨소리.
이노사카 토모카 : .....스으.....스으.....(자면서 내는 소리임. <컳헑 주>)
사코 신페이 : ......토모카 씨
토모카씨는 바르게 앉은 채로 잠들어 있다.
어깨를 흔들어도 반응이 없다.
달빛에 희미하게 가려진 순수한 표정을 바라보며,
가슴속에 끌어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사코 신페이 : 토모카씨. 내일도 일해야 되잖아요. 안돌아가도 돼요?
찰싹찰싹 뺨을 가볍게 때리자, 완만한 움직임으로 손을 뿌리쳤다.
이노사카 토모카 : 우웅.....오늘은, 사코 집에서 잘래....
사코 신페이 : 오늘도, 겠죠....최소한 침대에서 자세요. 감기 걸린다구요
이노사카 토모카 : .....스으.....스으.....(자면서 내는 소리임. <컳헑 주>)
사코 신페이 :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온다.
토모카씨도 그렇고 스즈노도 그렇고, 나는 아무래도
여성에게 아무렇게나 취급당하는 별 아래에 있는걸지도 모른다.
사코 신페이 : 토모카씨, 들어올려요....영, 차....
오른손을 등뒤에, 왼손을 다리에.
한마디로 공주님 안기(@1블로그 포스팅 참조) 라는 형태로,
소파에서 침대로 운송 한다.
익숙해져버린건 슬퍼해야 할 일일까,
아니면 좋아해야할 일일까는 판단하지 않는다.
이노사카 토모카 : 으응...
불안정한 자세에 반응했는지,
토모카씨의 오른손이 내 옷을 꼭 잡았따.
무방비한 모습이 바로 눈 앞에 있다.
평소의 고집스러운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순수한 표정에,
심장의 수축은 점점 가속해만 간다.
이대로 조금만 얼굴을 다가가는 것만으로.....하고 몇번이고 생각하고,
몇 번이고 , "그건 반칙이다"라고 고뇌했는지 모르겠다.
술 기운으로는, 안 좋다.
그런 걸 친구에게 말하자, 녀석들은 입을 모아
나의 순정을 바보취급했지만, 어쩔 수 없는 거다.
따뜻한 체온과 부드러운 감촉을 필사적으로 의식 밖으로 밀어놓고,
침대로 운반을 완료한다. 나도 모르게 크게 한숨을 뱉었다.
사코 신페이 : ....정말, 칠칠치 못해. 칠칠치 못하다고, 사코 신페이...
하지만, 이 칠칠치 못함이 있기에,
토모카씨는 이렇게 내 방에 있다는 사실 또한 역시 존재했다.
더욱 더 한숨이 새어나온다.
사념에서 도망치듯, 창문을 열었다.
얼음은 이미 녹아버렸지만, 유리잔을 들고 베란다로 나온다.
반달보다 약간 찬, 토오칸야의 달.(토오칸야(十日夜):음력10월 10일 밤. 동(東)일본에서, 벼베기를 끝내고 밭의 신이 산으로 돌아가는 것을 배웅함, 하고 나니 이걸 왜 주석달았지 싶네... <컳헑 주>)
말 없이 비치는 달빛에, 취기가 사라져간다.
불어오는 희미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얼어붙게 만드려는 듯이 냉기를 끌고 온다.
달님의 희미한 윤곽으로, 스즈노를 생각한다.
어떠한 대답을 유도하기 위함이 아닌,
영상으로서 떠오른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무거운 병을 가지고, 오디션을 위해서가 아닌,
영정사진을 희망하는 이유.
그것은.
떠오른 사고를 없애려는 듯, 유리잔을 기울였다.
의식은 한번에 혼탁함으로 빠져간다.
확실히, 술은 혼자서 마실 건 아닌 것 같다.
챕터리스트에서
2009. 02. 02(MON) 를 다 본 후 보면 됨.
이번엔 좀 많아서 잘라고 했는데 다 해석하니까 2시 19분...내일 알바 가야하는데.
번역 내에 주석
@1 : '공주님 안기'라는건

말로 설명하게 욜랭 힘드네...그림도 고자, 어휘력도 고자...
그러니까 영화 '보디가드' 마지막 장면처럼. 어떤 한 사람의 어떤 한 사람의 등과 다리를 잡고 들어올리는 거.

P.S : 음, 찾고보니 그림이 꽤 괜찮네...
본문(클릭)
2009. 02 05(Thu)
목요일 정오.
촬영한 스즈노의 사진을 보여주자, 점장님은 배를 잡고 웃었다.
타이밍도 안좋았다.
점장님이 오른손에 쥐고 있는 호입크림은,
바닥에 10센티의 하얀 궤적을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지금도 여전히 그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사코 신페이 : ...이 사진, 그렇게 못 찍었나요...?
점장 : 아니아니! 귀엽구만! 이 억지스러운 느낌이 정말.....하하하핫!!
사코 신페이 : 점장님 눈물이 고여있네요...... 그렇게 웃을 만한 사진인가요?
아무래도, 점장의 마음에 든 모양이다.
초침이 2바퀴 반을 돌고 나서야 겨우
점장님은 숨을 헐떡거리며 조리장에서 나왔다.
점장 : 아아~, 간만에 실컷 웃어봤군. 이야, 설마 이렇게 귀여운 아이 일줄은 생각도 못해서 말야
사코 신페이 : 진심으로 안들려요 점장님. 아직 제 기술도 미숙한지라, 제대로 안 나온거라구요
점장 : 핫핫하, 미안미안. 흐음, 꽤 괜찮은 사진이라고 생각한다구. 그래, 뭐랄까...
점장 : 뭐랄까...중학생 커플이 처음으로 둘이서 찍은 사진같은 달콤함이 잘 나왔다고 생각하네. 한마디로 감귤계열이로구만. 오렌지필을 첨가하고 싶어
사코 신페이 : 그거 칭찬하는 겁니까..?
점장 : 칭찬하는거지. 사코군, 귀엽다고 해서 손대면 안된다? 아니면 야한 사진을 찍는다든가
사코 신페이 : 안찍어요!! 점장님은 그렇게도 보고 싶으신 겁니까?
점장 : 보고 싶어
사코 신페이 : 즉답하지 마세요
점장 : 무진장 보고 싶어
사코 신페이 : 반복하지 마세요
점장 : 농담일세 사코군. 단지 자네의 열정이 거기로 빠질 가능성도 있지 않겠나?
사코 신페이 : 아뇨, 없을 겁니다
점장 : 아니, 사람일은 모르는 거야. 좀 더 멋지게 찍고 싶다, 좀 더 아름다운 모습을.....그렇게 생각한 순간, 사코군은 그 아가씨에게!
점장님의 관자놀이에 자동계산대 열쇠를 갖대 대었다.
사코 신페이 : 그, 러, 니, 까, 안찍는 다니까요
점장 : ....오케이, 수영복까진 허락하겠네 사코군. 난 말이지 자네에 순정을 믿고
그대로, 눌러버렸다.
......................
스튜디움 앞 돌담. 오늘도 스즈노는 먼저 기다리고 있다.
넓고 완만한 커브 중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은 너무나 외롭게 비친다.
내가 온 걸 눈치챈 순간 그녀의 얼굴은 미소가 되고,
일어나서는 손을 흔든다.
에노마치 스즈노 : 안녕, 사코 씨. 사진, 어떻게 됐어?
사코 신페이 : 아르바이트하는 곳 점장님에게 보여주니, 폭소하시더라
에노마치 스즈노 : 엑!? 잠깐, 뭘 보여주는거여!? 거기다 폭소라니, 실례잖여-! ...그, 그렇게 심해?
사코 신페이 : 아니, 그럭저럭 나왔다고는 생각하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수십장의 사진을 건넨다.
에노마치 스즈노 : 어디어디.....으아....
스즈노의 반응은 점장님과는 전혀 반대된, 쓴웃음이었다.
한장 한장 볼때마다 '우와아'같은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에노마치 스즈노 : 작은 화면으로 보긴 해서 대충은 상상하긴 했지만... 뭐라카노, 뻘쭘함? 남자 손 처음 잡아보는 여중생? ....뭐, 내긴 하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표현을 늘어놓으면서도, 사진수는 줄어만 간다.
마지막 한장을 가장 끝쪽으로 넘기고, 스즈노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에노마치 스즈노 : ....모델이라는거 어렵구나. 좀 더 얼버무릴 수 있을끼라 생각했는데.
사코 신페이 : 내가 미숙한 것도 있잖아, 모델 때문만은 아냐
모델의 반응에는, 나도 모르게 찍은 나 자신도 침울해진다.
스즈노는 그걸 눈치챘는지,
내 축 처진 어깨를 소리가 날정도로 두드렸다.
에노마치 스즈노 : 자자, 침울해 할 꺼 없다! 별 수 없잖여, 다시 찍으면 되는거잖여!
목소리는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 표정은 웃고 있었다.
사코 신페이 : 스즈노, 즐거워 보이네
에노마치 스즈노 : 전에도 말했제, 모델도 조금 재밌어 졌다구. 최고의 한 장을 찍을 수 있을 때까지 하면 되잖여. 그제?
최고의 한 장. 그 단어에 가슴이 조금씩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몇 천번이고 셔터를 눌러왔다.
그래도 진심으로 베스트 샷을 찍었다는 실감을
맛 본 적은 없었다.
그 장소에 도달 할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해 본다.
눈 앞에는 미소짓는 스즈노의 모습, 손에는 무거운 카메라.
사코 신페이 : 최고의 한 장이라.....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에노마치 스즈노 : 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 가 아니라 찍어야지
모델도 카메라맨도 아직은 서툴지만, 계속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도달점에, 손가락 끝만이라도 닿을지도 모른다.
태어난 등불의 열은, 마음에 목표를 부여하고,
폐속에 들어간 공기를 결의로 바꾸었다.
사코 신페이 : 그래. 난, 몇 번이고 함께 할게
그 대답에 스즈노는 미소지었다. 조용하면서도 열의가 느껴지는 미소였다.
에노마치 스즈노 : 좋~아! 그럼, 오늘도 촬영 해 볼까!
스즈노는 돌담을 튕기듯 내려간다.
옷과 머리카락이 하늘하늘 흔들린다.
에노마치 스즈노 : 사코 씨. 자, 얼렁 가자. 시간과 기회는 안 기댕겨준다고
사코 신페이 : 자, 잠깐 기다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들고, 급하게 렌즈를 카메라에 끼운다.
파인더를 보자, 뒤돌아본 스즈노가 잡힌다.
카메라를 향해 오른손을 뻗어, 손가락 대포를 만들고 있다.
에노마치 스즈노 : 빠~앙. 뭐 이런거라든가~
여기서도 나는, 셔터 찬스를 놓쳐버렸다.
기록하지 못한 영상이 또 하나, 내 기억속에서만 남겨져 간다.
.................
에노마치 스즈노 : 네~엣! 스즈노 쨩입니다~! 이예~이!....안되겠어. 의욕만으로는 얼버무리기 힘들어
사코 신페이 : ...뭐하는거야
에노마치 스즈노 : 말하지맛! ....나도 모르겠다고. 의욕이 있으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았다구...
닛산 스튜디음의 아랫층.
햇빛은 차단되어, 차가 3대는 다닐 정도로 넓은 통로가
커브하면서 뻗어있다.
머리위를 온통 뒤덮은 콘크리트.
굵은 기둥이 등간폭으로 늘어서 있다.
그 사이에 주차장이나 수영장시설로 가는 입구가 있다.
여전히 사람은 없었고, 넓은 공간에 발 소리만 울려퍼진다.
에노마치 스즈노 : 뭐랄까이. 외로워한다든가, 그......남자의 '지키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시키는 느낌이 좋을까?
그렇게 말하며, 스즈노는 콘크리트 기둥에 손을 대고 눈동자 만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에노마치 스즈노 : 사코 씨, 오늘밤은 돌아가고 싶지 않아......
사코 신페이 : ........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로 밖엔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말은 할 수 없었다. 말 없이 셔터를 누른다.
이 사진, 점장님에겐 제대로 통할 것 같다.
분명, 스즈노는 갈기갈기 찢어 버리겠지.
사코 신페이 : ...스즈노는 자연스러운게 가장 좋은 것 같다. 어줍잖게 연기하려고 하니까 표정이 더 딱딱해지는게 아닐까?
에노마치 스즈노 : 자연스럽게 라고 해도..일반적으로 어렵다구.
사코 신페이 : 그렇긴한데... 하지만, 자연스러운 미소가 좋은 사진이 될 것 같아
에노마치 스즈노 : 자연스럽게라......미소 연습같은거, 안하는게 좋을까?
사코 신페이 : ....연습, 했었어?
에노마치 스즈노 : 에? 아.....안했어! 바보, 그런걸, 뭐하려고 해...
그렇게 중얼거리며 볼이 빨개진 것 같긴 하지만,
확인도 하기 전에 스즈노는 등을 돌려버렸다.
에노마치 스즈노 : ...그래도 역시, 찍을거라면 웃는 사진이 좋겠어. 행복해보이는 표정을 남기고 싶거든
사코 신페이 : 행복해 보이는? 귀여운게 아니고?
스즈노는 마치, 결혼식 사진을 찍는 것 같은 소릴 한다.
오디션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지만,
스즈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대로 걸어가는 스즈노를 보고, 황급히 옆에 나란히 선다.
당분간, 콘크리트 통로에 발소리만이 울려퍼진다.
차가운 바람이 계단을 빠져나와,
통로를 타고 빠져나와, 두 사람의 등뒤를 빠져나간다.
스즈노의 발이 멈춘다.
에노마치 스즈노 : ...저기, 사코 씨
사코 신페이 : 응?
에노마치 스즈노 : 나, 사코 씨를 좋아해도 될까?
사코 신페이 : ..........뭐?
한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녹슨 기계처럼 고개를 돌리자,
스즈노는 흐릿한 시선을 앞을 향해 던지고 있다.
사코 신페이 : 스, 스즈노? 무슨 소릴...
에노마치 스즈노 : ....뭘 두려워하는거야. 정말 실례되는 녀석이구만...
사코 신페이 : 두려워하는게 아니라, 놀란거야. 갑자기 이상한 소릴 하니까 그렇지...
에노마치 스즈노 : 그치만, 미소지을 상대가 사코 씨잖여? 카메라가 있다는건 알지만, 결국 사코 씨에게 미소 짓는 거잖여?
사코 신페이 : 그건 그렇지만...
에노마치 스즈노 : 그게 부끄럽다구. 사코 씨에게 유혹하는 느낌이 아무래도 오싹오싹 하거든
에노마치 스즈노 : ...그러니까 그냥, 사코 씨를 좋아하게 되면, 자연스러운 미소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겨....딱히 이상한 건 아니잖여?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디
사코 신페이 :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지만 .... 그런 이유로.....
에노마치 스즈노 : ....풉. 아하하하하하!!
스즈노는 성대하게 웃으며, 뒤돌아서서는 손가락을 내밀었다.
에노마치 스즈노 : 사코 씨, 뭘 그리 우물쭈물 하능겨. 한 가지 제안을 했을 뿐이잖여? 아니면 뭐여? 실은 나한테 마음이 있능겨?
사코 신페이 : 아, 아니, 그게..
말문이 막힌 나를 두고, 스즈노는 나보다 앞에서 걸어간다.
에노마치 스즈노 : 농담이여. ...아~, 재밌었다. 내가 연상의 남자를 놀려먹다니, 왠만해선 기회가 없다구.
사코 신페이 : 뭐, 뭐야...너 날 갖고 논거야?
에노마치 스즈노 : 그건 비밀이여. ....아, 그래. 사코 씨, 그 카메라 타이머 달려있제?
사코 신페이 : 응, 그런데...?
에노마치 스즈노 : 나만 찍어도 재미 없잖아? 사코 씨도 같이 찍어보지 않을려?
대답을 듣지도 않고 스즈노는 뒤에서 가방을 뒤진다. 스텐레스 삼각대를 꺼내들고 그 다리를 늘였다.
에노마치 스즈노 : 자, 셋팅혀-! 사코 씨도, 찍히는 쪽의 마음을 확실하게 느껴보라고
사코 신페이 : 네, 네...
나는 이렇게, 고집스러운 여성에게 계속해서 휘둘리는 것이었다.
그런 슬픈 생각을 하면서, 삼각대와 카메라를 연결한다.
타이머 촬영으로 셋팅하고,
파인더를 스즈노 쪽으로 돌린다.
사코 신페이 : 왠지 안 내키는데...
에노마치 스즈노 : 뭐하능겨? 얼렁 와-!!
사코 신페이 : 알았어. 자, 찍는다...
버튼을 누르자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스즈노가 손을 흔들고 나를 부른다.
옆에 나란히 서자,
스즈노는 옆에 선 내 팔과 얼굴을 교차로 바라보았다.
에노마치 스즈노 : ....아-....저~기...
10카운트 사이의 생각의 결과.
스즈노는 반보정도 다가와, 내 옷 끝을 작게 잡았다.
셔터가 내려간다.
그 사진은, 그야말로
'중학생 커플이 처음 둘이서 찍었던 사진'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꽤 괜찮은 사진으로 현상되게 된다.
이렇게 두 번째 촬영회는 끝나고,
다음 날짜를 정하고 헤어졌다.
귀로로 향하는 스즈노는, 저녁노을의 부드러운 빛을 등뒤로 받으며,
발걸음 속에서 작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인생은 짧으니 사랑하라 소녀여'
그런 말이 들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딱딱한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퍼진다.
노인의 지팡이 소리, 황급히 걸어가는 간호사의 발소리,
병문안온 아이가 게임기를 떨어뜨리는 소리.
오후 6시.
요코하마재난병원의 엔트렌스는,
음표없는 잡다한 소리를 계속해서 반향시키고 있다.
의자에서 올려다본 천장은 높았고,
일몰의 어둠을 가르듯이 형광등이 반짝이고 있다.
사람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해,
건물전체가 조용한 밤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한다.
앞으로 2시간만 지나면, 깊고 깊은, 차가운
정적의 공간으로 변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노이즈에 귀를 기울이기를, 수 분.
어떤 한 소리가, 똑바로 이쪽으로 다가 오고 있다.
나에겐 이미 익숙해진 발소리.
이노사카 토모카 : 오늘도 마중나오느라 수고했어요, 세바스챤
사코 신페이 : 당치도 않은 말씀이옵니다, 아가씨.
이노사카 토모카 : 차는 준비 됐나요?
사코 신페이 : 물론이옵니다, 2륜이지만
이노사카 토모카 : 잘 부탁 드립사와요
사코 신페이 : .........
이노사카 토모카 : ........
사코 신페이 : ........
이노사카 토모카 : ......
사코 신페이 : ........
이노사카 토모카 : ..........
이노사카 토모카 : ....저기, 사코. 언제까지 계속할거야? 언제부터 내가 아가씨가 되버린거야?
사코 신페이 : 토모카씨가 먼저 시작했잖아요....잘 부탁 드립사와요, 라는건 대체 어느나라 말입니까?
이노사카 토모카 : 고대 헤브라이 어야
사코 신페이 : 절대로 아니겠죠?
이노사카 토모카 : 그건 모르지.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잖아?
이노사카 토모카씨는 방긋 웃었다.
고등학교 시절 선배이며, 오랫동안 짝사랑 상대이며, 간호가 1년차.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이라는 어중간한 관계는,
이렇게 일을 끝낸 토모카씨를
마중나온다 라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내가 멋대로 오고 있다는 게 맞는 말이었고,
옆에서 보면 꼴사나운 남자로 보일지도 모른다.
이노사카 토모카 : 아 그래. 사코, 슬슬 그거, 오지 않았을까?
사코 신페이 : 왔어요
이노사카 토모카 : 정말? 오늘은 사코 집, 들렀다 가도 돼?
그거라는 건, 아이릿슈위스키, 젬슨18년.
지금은 이노사카의 명의로 술이 오는 건 극히 평범한 일이 되어버렸다.
사코 신페이 : 상관은 없지만, 왜 항상 제 집으로 오는 건가요....
이노사카 토모카 : 뭐 어때. 같이 마실 사람이 너 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잖아. 술은 혼자서 마시는게 아니라구
사코 신페이 : 네, 네....
여전히 난처한 태도를 취하긴 해도,
내심 조금 기뻐하는 내가 그곳에 있다.
'반한 상대에겐 약하다' 라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라,
한밤중에 갑자기 들이닥쳐도,
미소로 맞이해 버린다.
결국,
찬장에 진열된 유리잔을 보고 헤죽거릴 정도니,
나도 참 어쩔 수 없는 녀석이었다.
사코 신페이 : 그럼 갈까요, 아가씨?
이노사카 토모카 : 그래요, 세바스챤.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건 리무진 아니면 롤스로이스겠죠?
사코 신페이 : 혼다의 오토바이라 죄송합니다,
이노사카 토모카 : 후훗. 괜찮아요. 그 뒷좌석, 싫진 않으니까
아무렇지 않은 대화를 계속하며,
손과 손이 접촉하지도 않은채 나란히 걸어간다.
이 8센티의 거리를 좁히는건,
언제가 될까...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던 때였다.
에노마치 스즈노 : .......아
여자아이가 종종걸음으로 자동문을 빠져나와, 스쳐지나간다.
어둠속에서도, 어디선가 본 듯한 옆모습.
몇 시간 전에 본 그 복장을 확인한다.
사코 신페이 : ...어, 어라...?
여자아이....스즈노는 이쪽을 눈채치지 않고,
구석을 지나, 엔트랜스로 달려간다.
깜짝놀라 뒤돌아보는 나를,
토모카씨가 이상한듯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이노사카 토모카 : 왜 그래?
사코 신페이 : 아니, 아는 사람인 것 같아서...
지금은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지만, 틀림없이 스즈노였다.
짧은 순간이라해도,
파인더로 계속 보았다. 틀림 없다.
토모카씨는 시선 끝을 찾으려는 듯 돌아본다.
그리고, 덤덤하게 말했다.
이노사카 토모카 : 스즈노쨩이 왜?
사코 신페이 : 헤?
나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사코 신페이 : 토모카씨가, 왜 알고 있는거죠?
그렇게 묻는 나를, 토모카씨는 뭘 이제와서 라는 듯이,
조금 놀란 듯 대답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순간, 들었으면 안될 말이었음을 인식했다.
하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간단하게 울려퍼진다.
이노사카 토모카 : 그야, 여기 입원하고 있는 환자니까 그렇지. ....몰랐어? 스즈노쨩, 네가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가게 점장님 딸이야.
....................
단단한 얼음을 깨는 소리가 부엌에서 들린다.
일정한 템포로 움직이는 아이스픽이 얼음을 깬다.
불투명한 직방체는 점점 동그라미 형태에 가까워진다.
병원에서 1킬로도 안가면 도착하는 나의 집.
촬영회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스즈노가 입원한 이유를 묻자,
토모카씨는 단 한마디만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노사카 토모카 : ....혈액의, 병
테이블에는 이미 위스키 유릿잔이 침좌하고 있고,
곧 그 유릿잔에 채워질 알콜을 기다리고 있다.
안주는 초콜렛과 피스타치오.
앞으로 몇십분만 기다리면 피자가 온다.
토모카씨의 왼손 위. 헝겊 너머로 올려진 얼음덩어리는,
얼음을 향해 날아오는 송곳에게 깎이고 있다.
튕겨나간 결정은, 공중에 자그마한 반짝임을 남기며 사라져간다.
사코 신페이 : 혈액요....?
계속해서 묻는 나에 대해,
토모카씨는 시선도 손의 움직임도, 뭐 하나 변하지 않은채로 대답한다.
이노사카 토모카 : 더 이상 묻지 마, 사코. .....미안. 환자의 프라이버시에 대한건 말할 수 없어. 담당이 아니니까 자세히는 잘 모르는 것도 있지만
그럭저럭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을때, 토모카씨는 픽을 바꾸었다.
3개가 돌출된, 짤막한 포크같은
아이스픽을 꺼내들고는, 표면을 얇게 깎아 나간다.
바텐더가 하는 걸 보고 동경하기 시작해,
동경만으로 그치지 않고, 체득했다고 한다.
직접 깎은 얼음으로 위스키를 만드는 것이,
토모카씨의 즐거움이었다.
21세라 하기엔 조금 텁텁한 취미지만,
그런 부분이 왠지 어울리는게, 이노사카 토모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노사카 토모카 : ....자. 한 개 다 됐어
다 된 얼음은 유리알처럼 투명했고,
아름다운 구체 형태를 그리고 있다.
딸그랑.
텅 빈 유릿잔에 얼음이 떨어지자, 기분좋은 소리가 났다.
토모카씨는 만족스러운 듯 입가에 미소가 생긴다.
이노사카 토모카 : 하나 더 만들거니까, 먼저 마시고 있어
사코 신페이 : 기다릴게요
이노사카 토모카 : 상관없는데...
단지 선후배 그런 관계가 아니니까. 그렇게 들리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런 내 달콤한 망상 따위 알 지도 못한채.
토모카씨는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픽으로 깎기 시작한다.
이노사카 토모카 : ....있지, 사코. 스즈노쨩이랑 촬영하는거, 앞으로도 계속 할 거야?
사코 신페이 : 계속 해야죠
이노사카 토모카 : 그래...
토모카씨는 조금 생각중인 듯한 얼굴을 만든다.
이게 질투라면 좋겠지만, 현실은.
이노사카 토모카 : 스즈노쨩이 걱정이야. 병원 빠져나와서, 그런 걸 하고 있는것도 몰랐고...
이노사카 토모카 : 마음속으로 어깨를 떨군다.
한조각의 질투도 없는,
그저 환자를 걱정하는 성실함이 사랑스러우면서도 분하다.
이노사카 토모카 : 사코. 계속하는건 괜찮아. 단지, 무슨 일 생기면 꼭 연락해. 꼭이다?
사코 신페이 : 무슨 일이라뇨?
이노사카 토모카 : 예를 들면...계단에서 넘어진다든가, 갑자기 빈혈로 쓰러진다든가 그런거
사코 신페이 : ....심한 병인가요?
이노사카 토모카 : ..........
얼음을 깎던 손이 멈췄다.
대답은, 방금이라도 울어버릴 듯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건 대답으로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사코 신페이 : ....죄송해요, 안 들었던 걸로 해주세요
이노사카 토모카 : ...응
토모카씨는 얼음을 깎는 작업으로 돌아간다.
죄악감은 있지만, 그 이상의 사항이 덮고 있었다.
머릿속에 정리되질 않는다.
목숨과 연관된다...그 말이 너무나도,
낮에 파인더에 비춰진 활발한 존재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노사카 토모카 : ...저기, 사코. 왜 스즈노쨩이 촬영을 의뢰했는지, 알아?
사코 신페이 : ....아뇨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래도,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무거운, 목숨과 연관된 혈액의 어떤 병.
사진을 찍어달라는 것.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찍고 싶다는 것.
그 이유, 그 의미.
사실에서 유추되는 대답은 명백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 저음으로써 모자이크를 만들고 있다.
몇 시간 전, 파인더 앞에서
뻣뻣한 미소를 만들던 여자아이에게.
나란히 옆에 서서 내 옷깃을 잡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못했던 여자아이에게.
그 대답을 끼워맞추는건, 지금은 아직, 너무 괴로웠다.
이노사카 토모카 : 그래....
토모카씨는 짧게, 그렇게만 말했다.
서로 한 번씩 한숨을 쉬고,
당분간, 얼음을 깎을 뿐인 침묵이 흐른다.
몇 십번, 얼음을 깎았을까.
포크처럼 생긴 픽크를 꺼냈을 때,
토모카씨가 독백처럼 중얼거린다.
이노사카 토모카 : ....나이팅게일의 서사(誓詞)라는거, 알아?
사코 신페이 : 네?
이노사카 토모카 : 내가 좋아하는 말이야. 마지막엔 이런 말로 끝나. "나는 진심을 다해 의사를 돕고, 내 손에 맡겨진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이 몸을 바친다"
이노사카 토모카 : ...행복을 위해. 반대로 말하면, 환자들은 전부, 불행한 상태에 있는 거겠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이해하지 못한채,
나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것 밖엔 하지 못했다.
그런 나를 의식밖에 두고,
토모카씨는 다시 말을 잇는다.
이노사카 토모카 : .....이렇게 무심히 얼음을 깎고 있으면 말야,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돼. 나와 환자와, 뭐가 다른가, 를 말야
이노사카 토모카 : 스즈노쨩은....그저, 조금 불행할 뿐이었다. 운이 안좋았어. 그것만으로, 그 장소에 있는거야
이노사카 토모카 : ....단지 그것뿐이야. 그것만으로, 스즈노쨩은 많은 것들을 참아야만 했어. 식사도 운동도 제한. 학교도 갈 수 없어
이노사카 토모카 : 그곳에는, 스즈노쨩과 비슷한 사람들이 아주 많아.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우리들이 있는거야....언제까지고, 불행하게 놔두고 싶진 않잖아?
얼음이 완성되었다. 유리잔에 떨어져, 소리를 낸다.
토모카씨는 픽과 헝겊을 정리하고,
테이블에 놓인 사진을 손에 잡았다.
표면에 비춰진 미소에, 약간 눈을 감는다.
이노사카 토모카 : 언제까지고, 불행한 채로 놔두고 싶지 않잖아? ....행복해야지. 언제까지나, 웃고 지낼 수 있게 해줘야지. 설령...
우리들이, 도와줄 수 없다 하더라도.
그 말이 이어지는 일 없이,
토모카씨는 슬프게 웃으며, 한숨을 지었다.
이노사카 토모카 : ...뭔가, 무거워졌네. 미안. 안좋은 버릇이야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아니오'라고 대답하지도 못하는 나였다.
토모카씨는 손질된 위스키의 뚜껑을 뽑았다.
호박색 액체가 얼음 표면을 미끄러져 내려간다.
녹은 물과 위스키의 희미하게 흘러한 흔적이
유리잔 밑에서 조용히 춤춘다.
이노사카 토모카 :....마실까. 모처럼 비싼 걸 사왔다구. 사코에겐 공짜술이니까, 감사하라구?
유리잔이 부딪히며, 40도의 알콜이 목을 타고 흘러내려간다.
있어야할 풍미는 어딘가 나에게서 멀리 가버리고,
목에는 타들어가는 듯한 감촉만 그저 남아있었다.
.........................
눈을 뜬다.
방에 빛은 없고, 창문에서 희미하게 달빛이 내려오고 있다.
아무래도, 잠들어 버린 모양이다.
융단에 누워있는 내 위에는, 이불이 덮혀있다.
일어났지만, 희미한 두통이 남는다.
기억은 6잔까지. 토모카씨가 담당하게 된,
예전에 라쿠고(落語: 일본의 익살을 주로 한 이야기. 만담. <컳헑 주>)를 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 부근에서 기억이 흐릿해졌다.
방에는 에어컨 구동음과,
소파에서 들려오는 작은 숨소리.
이노사카 토모카 : .....스으.....스으.....(자면서 내는 소리임. <컳헑 주>)
사코 신페이 : ......토모카 씨
토모카씨는 바르게 앉은 채로 잠들어 있다.
어깨를 흔들어도 반응이 없다.
달빛에 희미하게 가려진 순수한 표정을 바라보며,
가슴속에 끌어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사코 신페이 : 토모카씨. 내일도 일해야 되잖아요. 안돌아가도 돼요?
찰싹찰싹 뺨을 가볍게 때리자, 완만한 움직임으로 손을 뿌리쳤다.
이노사카 토모카 : 우웅.....오늘은, 사코 집에서 잘래....
사코 신페이 : 오늘도, 겠죠....최소한 침대에서 자세요. 감기 걸린다구요
이노사카 토모카 : .....스으.....스으.....(자면서 내는 소리임. <컳헑 주>)
사코 신페이 :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온다.
토모카씨도 그렇고 스즈노도 그렇고, 나는 아무래도
여성에게 아무렇게나 취급당하는 별 아래에 있는걸지도 모른다.
사코 신페이 : 토모카씨, 들어올려요....영, 차....
오른손을 등뒤에, 왼손을 다리에.
한마디로 공주님 안기(@1블로그 포스팅 참조) 라는 형태로,
소파에서 침대로 운송 한다.
익숙해져버린건 슬퍼해야 할 일일까,
아니면 좋아해야할 일일까는 판단하지 않는다.
이노사카 토모카 : 으응...
불안정한 자세에 반응했는지,
토모카씨의 오른손이 내 옷을 꼭 잡았따.
무방비한 모습이 바로 눈 앞에 있다.
평소의 고집스러운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순수한 표정에,
심장의 수축은 점점 가속해만 간다.
이대로 조금만 얼굴을 다가가는 것만으로.....하고 몇번이고 생각하고,
몇 번이고 , "그건 반칙이다"라고 고뇌했는지 모르겠다.
술 기운으로는, 안 좋다.
그런 걸 친구에게 말하자, 녀석들은 입을 모아
나의 순정을 바보취급했지만, 어쩔 수 없는 거다.
따뜻한 체온과 부드러운 감촉을 필사적으로 의식 밖으로 밀어놓고,
침대로 운반을 완료한다. 나도 모르게 크게 한숨을 뱉었다.
사코 신페이 : ....정말, 칠칠치 못해. 칠칠치 못하다고, 사코 신페이...
하지만, 이 칠칠치 못함이 있기에,
토모카씨는 이렇게 내 방에 있다는 사실 또한 역시 존재했다.
더욱 더 한숨이 새어나온다.
사념에서 도망치듯, 창문을 열었다.
얼음은 이미 녹아버렸지만, 유리잔을 들고 베란다로 나온다.
반달보다 약간 찬, 토오칸야의 달.(토오칸야(十日夜):음력10월 10일 밤. 동(東)일본에서, 벼베기를 끝내고 밭의 신이 산으로 돌아가는 것을 배웅함, 하고 나니 이걸 왜 주석달았지 싶네... <컳헑 주>)
말 없이 비치는 달빛에, 취기가 사라져간다.
불어오는 희미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얼어붙게 만드려는 듯이 냉기를 끌고 온다.
달님의 희미한 윤곽으로, 스즈노를 생각한다.
어떠한 대답을 유도하기 위함이 아닌,
영상으로서 떠오른 그 모습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무거운 병을 가지고, 오디션을 위해서가 아닌,
영정사진을 희망하는 이유.
그것은.
떠오른 사고를 없애려는 듯, 유리잔을 기울였다.
의식은 한번에 혼탁함으로 빠져간다.
확실히, 술은 혼자서 마실 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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